top of page

有聲(유성)

written by. L

 

 ‘그것’을 처음 본 건 소학을 막 떼었을 적이었다. 계집이 글을 아는 건 그 정도면 되었다며 서당 다니기를 금한 이후 혜준은 종종 몰래 오라비 방에 들어가 대학이나 논어를 챙겨 담을 넘고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위 뒤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들키면 호되게 혼이 났지만 혜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극락이라 며칠 뒤 다시 나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얄궂은 날시에 책을 가지고 나갔다가는 큰 낭패를 볼 성싶어 몸만 나가 바닷가를 거닐던 중이었다. 어촌에서 나고 자란 아이답게 어른들만큼은 아니라도 대충 바다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혜준의 눈에 바위틈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띄었다. 바닷물이 간간이 들어오지만 양이 많지 않고 내리쬐는 햇빛이 강해 수온이 높은 곳에서 거북이는 그물 쪼가리에 걸려 애타게 발버둥을 쳤다. 그게 어찌나 가엽던지 바위에 올라 고 작은 손을 내밀고 손수 그물을 벗겨내 바다에 돌려 보내준 혜준이 그만 땅에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이끼에 미끄러진 발이 허공에 헛돌아 그대로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누구도 동행치 않고 혼자 나온 탓에 도와줄 사람은 하나 없었고 이대로 빠져 죽겠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찰나였다.

 

 그러나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의 신하인 거북이를 살려준 은혜였을까. 자신을 받쳐 드는 다른 이의 팔에 폭삭 안긴 혜준이 벌렁대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켜 고개를 돌렸을 때 새파란 바다를 닮은 눈을 마주하고선 용왕을 만나 뵌 줄만 알았더란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손발만 벌벌 떠는 혜준을 신 한 짝이 떨어진 모래 위에 무사히 데려다 놓은 그것은 하체는 바다에 담근 채 사람의 팔로 상체를 받쳐 혜준을 가만히 구경했는데 그 모습이 꼭 순수한 아기와 같아서 혜준도 이내 찬찬히 그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입술을 뻐끔대나 도통 소리는 내지 않는 그것은 허리춤부터 온 하늘빛을 꼭 닮은 비늘을 가지고 있어 어느 것은 새까만 밤처럼 까맸으며 또 어떤 것은 해처럼 붉기도 했다. 제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고맙다고 말해도 고개만 갸웃대다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간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여쁜 조약돌 하나를 가져왔다. 그것을 건네주는 손이 물속에 있는 것치고는 너무나 보드라워 홀린 듯 조약돌을 받아 든 혜준은 해맑게 웃는 그것의 얼굴이 처음 친우를 사귄 아이처럼 맑아 따라서 웃고야 말았다. 그렇게 인간인 혜준과 인간이 아닌 것을 더 많이 닮은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벗이 되었다.

 

 “유진아, 유진아-”

 

 이제는 책 대신 이야기하는 재미에 푹 빠진 혜준은 책을 읽을 때보다 더 꼭꼭 숨어 바다에 대고 작게 제가 지어준 이름을 불렀다. 네 꼬리가 꼭 별처럼 윤이 나니 유진(油辰)은 어때?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름을 물어볼 턱이 없고 그렇다고 부를 이름이 없는 건 말이 안 돼 마음대로 지어준 이름을 다행히 상대는 좋아해 주었다.

 

 이름을 부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잔잔하던 수면에 다른 빛이 돌더니 젖은 머리칼과 반짝이는 눈동자가 드러난다. 반갑게 인사하자 상체를 조금 더 내빼 바위에 팔을 내린 유진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인다. 자신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린 이후 유진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천천히 입술로 모양을 만들었는데 혜준은 찰떡같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지금도 저를 따라 안녕이라 인사하는 입술을 보고 볼우물을 만든 혜준이 편히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세책방에 들러 책을 빌렸는데 애들이 댕기를 잡아당기고 여자애가 글을 읽는다고 자꾸 놀려서 그것들 고간을 확 차버렸다. 꼼짝을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데 그게 어찌나 통쾌하던지.”

 

 물론 대가로 아버지께 회초리질을 당했지만 혜준은 한 점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고자가 될 정도로 차지 못한 게 원통할 뿐이다.

 

 밝았다가 슬펐다가, 또 금세 화난 표정으로 바뀌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유진이 손을 뻗어 어여쁜 꽃신이 신긴 발을 쥔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에 깜짝 놀라 울면서 뒤로 물러난 적도 있었으나 (아닌 말로 인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알음알음들은 탓이 있다) 이제는 행동의 저의를 알아 바위 끝에 걸쳐진 발목을 까닥이며 덤덤히 유진의 손을 밀어낼 수 있었다. 괜찮다, 되었다 밀어내도 고집을 꺾지 않은 유진이 기어이 속치마를 무릎께까지 올리자 반쯤 체념한 혜준이 살살 유진을 달랜다. 멀쩡히 걸어 다니니 괜찮아, 그리 속상한 표정 짓지 마. 빨간 줄이 그어진 종아리를 내려다보는 눈이 퍽 속상하다. 되로 받으면 말로 주는 성격을 타고 태어난 혜준은 혼나는 게 익숙했지만 처음 혜준의 상처를 발견한 유진은 그게 뭔지도 몰라 건드렸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선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날에는 무조건 종아리를 살피려 들었다. 그리고 작은 상처라도 발견하면 제 비늘을 똑 떼어 올려놓는데 그럼 신기하게도 흉 하나 없이 피부가 저들끼리 아물어 멀쩡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늘도 유진의 일부인데 이렇게 막 뽑았다가는 혹 영롱한 꼬리가 민둥산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 혜준은 별로 치료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제 몸싸움을 벌이다 귀주머니를 떨어뜨렸나 봐. 제법 아끼는 은장도가 들어서 온 길을 되짚어 봤는데 없더라고.”

 

 원래 살결을 되찾기 무섭게 다리를 뒤로 물린 혜준이 탁탁 치마를 피며 대화를 바꾼다. 한양에 갔던 오라비가 서역에서 온 은장도라며 선물로 사주었기에 아끼던 물건이었건만 하루아침에 잃어버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은장도를 떠올리면 여즉 우울함이 가시지 않아 명경보다 투명한 눈동자에 자신을 비추어 보다가 급히 입매를 다듬는다.

 

 너무 오래 투정을 늘어놓는 것도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무엇보다 바다에만 있어 자신이 들고 오는 육지 일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좋아하는 친우에게 이런 안 좋은 이야기만 들려줄 수는 없다. 들고 온 이야기보따리는 많으니 희로애락 중 풀어놓은 노여움과 슬픔은 다시 주섬주섬 넣어놓은 혜준은 백구가 순산한 강아지와 문지방 앞에 떼어놓은 생선 살점을 물고 간 검은 고양이 이야기까지 기쁨과 즐거움을 담은 보따리를 줄줄이 꺼내 보였다. 한 마디 추임새도 없으나 초롱초롱 빛나는 눈은 대화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을 때부터 뉘엿뉘엿 넘어가 멀리서 혜준 아씨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쯤 번뜩 하늘을 쳐다본 혜준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툭툭 털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오늘은 이만 갈 테니 너도 얼른 돌아가.”

 

 젖먹이 강아지가 단호히 저를 내치는 어미 개를 보듯 서운함이 잔뜩 담은 낯이 아쉽게 바위에서 멀어진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가는 게 제 역할이라 오늘도 어서 들어가라 손짓하다가 입 모양으로 잠시만 외치는 유진에 팔랑팔랑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춘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물에 들어간 유진이 주먹을 꽉 쥐고 나왔는데 돌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쏟아낸 건 다름 아닌 푸른 해초 색을 닮은 작은 조약돌이었다.

 

 종종 자신이 기분 좋지 않은 날에는 바다 어디에선가 색색의 조약돌이나 조개, 그도 아니면 물고기를 가져오는 유진은 오늘도 역시 털어놓은 속상한 일을 잊지 않고 자기 나름의 위로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건 기분이 나아지는데 특효약이라 베싯 미소 지은 혜준은 두 손 넘치게 조약돌을 줍고선 크게 인사했다.

 

 “고마워. 고이고이 잘 모셔 놓을게!”

 

 파도를 크게 일으켜 답사를 대신한 유진이 수면에서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서둘러 발길을 돌린 혜준이 자신을 찾느라 난리가 난 사가로 달려가다 마땅히 조약돌을 담을 곳이 없어 오로지 유진과 자신만 아는 장소에 꼭꼭 숨기고선 마저 갈 길을 향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총 뜨는 별을 등진 채 나타난 한 사람이 주변을 살피다 혜준이 쭈그려 앉아 덮어놓은 모래를 파헤치는데,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허리춤에 매달린 장신구가 함께 흔들렸고 개중에는 유독 주황빛이 선명한 귀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잔뜩 모래를 묻힌 끝에 꺼낸 건 자그마한 조약돌. 달빛에 돌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사람은 이내 그게 가치가 없는 돌이라 판단했는지 욕지기를 지껄이며 발로 옹기종기 모인 돌무더기를 차버렸다. 딱 소리를 내며 돌들이 굴러다니다 몇 개는 바다에 빠지고 매끈한 표면은 생채기가 새겨진다.

 

 “뭘 그리 숨기나 했는데 고작 돌덩이? 참나! 하잘것없는 돌이나 가지고 노는 계집 주제에 더럽게 잘난 체하기는!”

 

 뒤 돌아 중얼대는 사람의 뒤로 작은 소용돌이가 생긴다. 범상치 않은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바다를 쳐다본 이는 곧 멍하니 넋을 놓고선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적였다. 고요한 공기가 높다란 음파에 흔들리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바위에 올라서 수평선을 쳐다보는 사람의 발목에 뱀처럼 손이 휘감긴다. 이어서 단말마의 비명과 같이 풍덩 묵직한 무언가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사위는 변함없이 조용했으며 바다는 언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는 듯 잠잠해졌다.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찾아오고 일찍 점심을 먹은 혜준이 바다를 찾았을 때는 어찌 된 일인지 유진이 먼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언제나 제 부름에 모습을 드러내는 유진이기에 크게 보폭을 늘린 혜준은 자신을 발견하고선 환히 웃는 얼굴 가까이 다가가 주저앉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야? 왜 벌써 나와 있어?”

 

 물음에 고개를 내저은 유진이 소중히 쥐고 있던 물건을 자랑스레 들어 보인다. 익숙한 자태에 고개를 갸웃대던 혜준은 그게 자신이 잃어버린 귀주머니라는 걸 알아차리고선 덥석 유진의 손과 더불어 물건을 잡아버렸다. 물에만 있어 축축한 피부를 가진 자신과는 다른 건조하고 따스한 온기에 맞잡은 손만 멍하니 바라보던 유진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득 정신을 깨웠다.

 

 “이걸 어디서 찾았어? 싸우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바다에 빠트려서 내가 찾지를 못했구나! 그래도 유진이 네 덕분에 무사히 찾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완전한 인간이 아닌 인어는 반은 짐승이라 죄책감, 미안함 등 타인에게 가지는 감정을 온전히 가지지 못한다. 눈앞에 있는 이가 햇살처럼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에만 모든 걸 치중해 그게 곧 자신의 기쁨이 되기에 유진은 결과를 도래하기까지의 과정이 옳고 그른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부들이 이른 새벽부터 그물을 치러 나갔다가 다리 한쪽이 망가져 겨우 숨이 붙어있는 최 대감 댁 아들을 발견하게 된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었다. 잔인한 순수함처럼 맹목적인 관심, 사랑, 집착만이 유진이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일 뿐이었다.

 

 귀주머니 안에 든 은장도 역시 무사함을 확인하고 한껏 들뜬 기분을 숨기지 못한 혜준은 그날은 종일 웃는 낯이었고 덕분에 바다도 큰 물살 없이 잔잔해 물질을 하러 나간 해녀와 어부는 지나가는 말로 최 대감 댁 아들이 제물로 바쳐져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해댔다. 저녁이 다 되어 사가에 돌아간 혜준도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지만, 그저 발을 헛디뎌 그랬나보다 넘기며 한편으로는 저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 난 놈이 그렇게 되었다는 소식에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다. 남자아이들 무리에서 대장 노릇을 한 놈이 그렇게 되었으니 당분간은 편히 지낼 수 있겠다 생각하며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엽전을 두둑이 챙겨 장에 나선 혜준은 점심도 거른 채 세 뼘 크기의 나무함을 가지고 바다로 향했다. 오늘은 잠잠히 바다 아래 숨어있는 유진에 수면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고 작게 이름을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 불쑥 상체가 튀어나온다.

 

 “아….”

 

 바다에 바투 다가선 탓일까. 자칫 코가 부딪칠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가 급히 물러서 작은 사고를 방지한 혜준은 쿵쾅대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겨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놀란 건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눈만 바깥에 내놓고 수면 아래서 숨을 쉬는 유진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혜준이 엉겁결에 바닥에 내려놓은 나무함을 냅다 내밀었다. 원래는 적당히 좋은 말을 한 뒤 깜짝 선물로 전해주려 했는데 이게 더 놀랄 일이라 상황을 바꿔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히 낯선 물건에 관심을 가진 유진이 물에서 나와 혜준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딸각 잠금쇠가 열리고 보이는 고운 비단에 고개를 들었다.

 

 하얀 산호초에 바다색 한 방울 번진 것처럼 옅은 푸른빛이 도는 비단옷 색감이 퍽 고와 잘 어울린다 말하자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은 혜준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펼쳤다. 저고리보다 길이가 긴 옷은 혜준이 입기에는 몹시 컸으며 사내들이 입는 대창의와 모습이 같았다.

 

 “이건 네 옷이야. 물건을 찾아준 답례를 하고 싶은데 마땅히 줄 게 없어 이런 거라도 주고 싶었어. 왜에 뱀도 수련을 하면 용이 된다는데 혹시 인어도 시간이 흘러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 물론 네가 원치 않으면 인간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꼭 보답하고 싶었어.”

 

 혹여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싶어 혀가 길어진다. 혜준은 차곡차곡 옷을 개켜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잘 정리하고선 뚜껑을 닫았다. 평소 제 작은 행동에도 큰 반응을 해주었던 유진 답지 않게 입술이 열리지 않아 초조해진 혜준이 도로 물건을 가져가려는데 긴 팔이 혜준에게 쭉 뻗어진다. 그걸 이리 달라는 말과 흡사한 행동에 함을 건네자 뚜껑을 열어 오래도록 옷을 눈에 담은 유진이 잠금쇠를 잘 여민 후 함을 안고 바다에 들어간다. 종종 적절한 대화 수단이 없다는 걸 불편하게 여긴 적이 있는데 지금도 이렇다 저렇다 기분을 알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는 게 퍽 고단하다.

 

 무릎을 끌어모아 턱을 괴고 바다를 내려다보던 혜준은 큰 파도 소리와 함께 우르르 번쩍이는 무언가를 쏟아내는 유진에 바싹 굳어 소란스러운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제 이름을 발음하고 뒤이어 몇 글자를 추가하는 입술을 찬찬히 보던 혜준은 어렵지 않게 뜻을 이해하고선 눈앞에 산처럼 쌓인 보화를 슥 밀어냈다.

 

 “이건 받지 않을 거야. 넌 이미 내게 귀한 선물을 주었고 난 그에 마음을 담은 보답을 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한 네 선물을 또 받을 수 없어.”

 

 거절했다는 건 알지만 거절한 마음은 전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한 유진이 한 번 더 보화를 슥 밀어주지만 단호히 표정을 굳힌 혜준이 귀주머니를 열어 연둣빛 조약돌을 꺼낸다. 고집부려도 안 돼, 나한텐 네가 준 선물이 이미 이렇게나 넘치는걸.

 

 끝내 받지 않는 혜준에 시무룩 가져온 보화를 끌어안아 툭 바다에 성의 없이 떨군다. 토라진 아이 같은 행동에 비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은 혜준은 양옆 목선에 너울을 닮은 실금을 살짝 어루만졌다. 물길에서 숨구멍 역할을 하는 그건 물에 막 올라오면 물을 쏟아냈고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틈새가 자그마했다. 사람으로 치면 숨길을 만지는 거나 다름없어 예민하게 반응할 법도 한데 손대어도 가만히 있는 유진에 엄지로 얇은 살결을 살살 어루만진 혜준이 잔잔히 달래는 말을 꺼냈다.

 

 “내가 부를 적마다 와주어서 이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내가 가장 기꺼워하는 선물이야. 그러니 서운치 말고 내 옆에 평생 있어 줘. 난 그거면 되었다.”

 

 진심은 눈빛으로도 충분히 전해지기 마련이다. 거짓 한 톨 없는 진실한 속내에 제 목덜미를 쓸어주는 손을 덮어 쥔 유진은 맑은 물 아래 꼬리를 부드럽게 유영했다.

 

* * *

 

 밝고 활달한 혜준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여자의 도리를 엄격히 교육하는 탓에 말 수가 줄어들고 차분히 성격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하고자 하는 걸 해내는 의지는 꺾이지 않아 집안의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친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피붙이라고는 아버지와 세 명의 오라비 중 같은 배에서 나온 한 명의 오라비밖에 없어 마음 놓고 어리광부릴 사람이 없는 혜준이 그럴수록 찾아가는 건 바다였다. 몸집이 커지며 몰래 나가는 게 더욱 어려워져 빈도가 줄어들었으나 혜준은 기회가 있으면 유진을 찾아가 긴 말 않고 시선만 마주하기도 했다.

 

 그러다 땋은 댕기를 풀고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었을 때 중매쟁이가 혜준의 사가에 수시로 들락날락했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혼사가 결정되어 납채서가 온 날, 혜준은 차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제는 표면이 닳은 바위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보고 싶어 찾아왔지만 우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어 차마 이름을 속삭이지는 못하고 서러운 눈물만 흘리는데 버선에 축축한 물기가 닿는다. 잔뜩 일그러진 낯으로 고개를 들자 저와 같이 표정이 좋지 못한 유진이 조심스레 치맛자락을 꾹 쥐고 있다. 통통한 젖살이 찬 아이에서 혼례를 올려야 할 나이가 되면서 외향이 조금씩 바뀐 혜준과 다르게 여전히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외모를 지닌 유진은 혜준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화가 날 때도 한결같이 혜준을 바라봐 주었는데 오늘은 그 사실이 몹시 서글퍼 왈칵 짙은 울음이 터진다. 아무 말도 않고 꺽꺽 울기만 하는 혜준에 안절부절못하던 유진은 몸을 조금 더 바깥으로 드러내 얼굴을 숨긴 손 중 오른손을 끌어 비늘 하나를 놓아주었다. 여태 받은 것들보다 어두운색을 지닌 비늘은 상처에 닿으면 녹아 없어지던 것과 달리 온전한 형태를 유지했다.

 

 “나, 이제 너를, 널, 흐으-, 보러 오지, 못 할 수도, 히끅, 있어….”

 

 그렇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여자는 혼례를 올린 순간 규문 안의 보기 좋은 장식품밖에 되지 못한다. 함부로 나설 수도 없으며 말할 수도, 다른 이와 말을 섞을 수도 없게 된다. 그리 크지 않은 이 마을에서는 남들의 시선이 족쇄나 다름없어 바닷일을 하지도 않는 부군의 아내가 남몰래 바다를 찾았다가는 큰 경을 칠 일이었다.

 

 왜 혜준이 자신을 만나러 오지 못하는지 연유는 알 수 없으나 그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어 비늘을 담은 손바닥을 오므려 손끝에 닿도록 한 유진이 애달파 어찌할 줄 모르는 입술을 달싹인다. 길게 찢었다가 위아래로 벌리기도 하며 들리지 않는 말을 완성했지만, 대꾸 않고 눈물만 툭툭 떨궈 뜻이 전해지지 않았나 싶어 몇 번이고 소리 없는 같은 발음을 완성한다. 그런 유진을 흐린 시야에 오래도록 담은 혜준이 왼팔을 뻗어 볼을 막 어루만지려는 찰나 제법 무게 실린 무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둘은 일제히 한 곳을 쳐다봤다.

 

 “당신이, 어찌 여기를…….”

 “이, 이, 이런 미친…!! 인간도 아닌 괴물과 정분이 나-?!”

 

 주저앉아 사색이 된 이는 혜준도 아주 잘 아는 얼굴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툭하면 괄시하며 부모의 권세를 등에 업고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이, 곧 제 부군이 될 사내였다. 여긴 바위에 오르는 길이 험준해 다년간 걸음을 한 혜준이 아니면 마을 사람 누구도 잘 찾지 않는 곳이다. 이런 곳에 저 사내가 직접 발걸음 할 리는 없고 아마도 어딘가부터 제 뒤를 쫓아 온 모양이다. 기실 혼례를 앞둔 자신에게 소문이 붙는 것보다 유진의 정체가 탄로 난 게 더 큰 일이라 성급히 몸을 일으킨 혜준은 사내 쪽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점점 엉덩이를 뒤로 내빼던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마을 사람을 깨우는 통에 피어나는 등불 개수가 늘어나 잔뜩 목을 움츠린 혜준이 방향을 바꿔 유진의 어깨를 있는 힘껏 아래로 밀어낸다.

 

 “도망가, 얼른! 얼른 가!”

 

 인간이 아닌 유진이 사람들에게 잡히는 날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건 오래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제다. 절박하게 자신을 미는 손목을 감싼 유진은 혜준을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고 숨기려 했으나 울며불며 어떻게든 떼어내려 애쓰는 행동에 모든 걸 멈추고 손바닥에 제 볼을 부볐다.

 

 내가 숨겨줄게, 나랑 가자, 이리 와, 내가 지켜줄게. 온갖 애원을 담은 몸짓에 눈가를 붉게 적신 혜준은 억지로 닿은 살갗을 떨어뜨리고선 유진에게 들려줄 마지막 목소리를 힘겹게 내었다.

 

 “실은 네가 인간이길 바랐던 적이 많았다. 어차피 누군가와 혼례를 올려야 한다면 말을 못하든 듣지를 못하든 네가 내 곁에 있기를 바랐어. 한데 이번 생은 아니 되려나 보다. 다음 생은 나도 인어로 태어나서 같이 넓은 바다를 누비자. 그때까지 유진이 넌 꼭 살아서 날 기다려 주어야 해. 이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그러니 멀리 가. 아주 멀리, 더 멀리 가.”

 그토록 악다구니를 써 밀어도 꿈쩍 않던 단단한 몸이 바다에 휩쓸린 풀처럼 나약하게 떠밀린다. 가까워지는 빨간 횃불과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뜨고야 마는 서러운 뒷모습.

 

 인간이 닿지 못하는 심해로 들어가 괴물이니 인어니 부르는 외침과 찰박대는 발소리, 수면에 바투 갖다 대 위협적으로 흔드는 불을 전부 올려다본 유진은 물살을 일으켜 혜준의 바람대로 멀리, 더 멀리 물속으로 들어갔다.

 

 

 

* * *

 

 한바탕 작은 어촌에 소란이 일어난 후 부쩍 줄어든 바다 수확물에 사람들은 인어를 노하게 해서 그렇다 작은 소문을 만들었지만 함부로 떠들어대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혜준의 혼례가 뒤집어지며 집안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고 가문의 수치라며 혜준을 절대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내밀지 못 하게 한 터라 모두 높으신 양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쉬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 초입에 닿을 즘 혜준의 사가에는 다시 중매쟁이의 출입이 잦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혼처가 정해졌다. 소문에는 산 하나를 건너야 하는 마을에서 오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한 사내와 혼례를 올린다는데 멀쩡한 집안에서 이미 한 번 내쳐진 여인을 들일 리는 없어 아마 하자가 있으리라 어림짐작했다. 그렇게 여우비 내리는 혼롓날이 찾아와 단장한 혜준이 가마에 오르기 전 대청에 올라서 내려오지 않는 아비를 지그시 응시하다 핏방울 맺힌 입술을 작게 움직였다.

 

 “이것으로 제가 아버지께 할 효의 도리는 전부 했습니다. 부고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리는 서신일 테니 그날까지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의 죽음을 논하는 것만큼 큰 불효도 없지만, 말을 전하는 혜준의 눈에만 핏발이 섰을 뿐 아비는 입꼬리를 씰룩이다 돌아서는 뒷모습으로 제 뜻을 전했다.

 

 경사답지 않게 한껏 침울한 분위기 속, 혜준을 태운 가마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사가를 작은 창으로 돌아보다 남은 미련 한 점들을 뚝뚝 떨군 혜준은 어렴풋 코끝을 스치는 바다 냄새에 창을 닫았다. 방에 갇혀있을 때도 쉼 없이 만지작거린 귀주머니를 꺼내 차마 안을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마냥 쥐고만 있던 혜준은 틈새로 들어오는 그리운 향이 사라지고서야 주머니를 열어 담긴 물건을 꺼내었다. 가장 먼저 은장도가 치마폭에 툭 떨어지고 뒤이어 비단에 쌓인 작은 물건이 떨어진다. 비단을 들어 천천히 펼쳐내니 여전히 빛바래지지 않은 검은 비늘이 중앙에 곱게 놓여있다.

 

 제 말 하나하나 허투루 듣지 않고 자신이 기뻐하면 덩달아 기뻐해 주고 슬퍼하면 자신이 더 슬퍼했던 벗이자 마음 준 이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 얼굴도 성품도 모르는 이와 살 부대끼며 살 생각은 없지만, 어디를 가서 이름을 불러야 지금쯤 깊고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유진을 만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막막함에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비늘에 떨어져 영롱한 색을 망칠까 서둘러 눈가를 훔친 혜준이 도로 비단을 동여맨다.

 

 괜찮아. 오래 걸린다 해도 상관없다. 설령 만나지 못해 죽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원치 않는 이와 살 바에는 그리운 이를 직접 두 발로 찾아다니다 그리 죽는 게 나았다.

 

 “아기씨. 산이 험준해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알겠……, 네.”

 

 쉬어가는 틈을 타 가마꾼들에게 이곳에 자신을 두고 간 뒤 양쪽에는 죽은 사람처럼 위장해달라는 부탁을 하려 엽전이 가득 든 다른 주머니를 꺼내려던 혜준은 사부작대는 바깥에 숨을 죽였다.

 

 산에 자신을 홀로 버려두고 간다고 하기에는 인기척은 있으나 으레 쉬어가는 사이 나누는 대화나 물이라도 찾아 마시는 소리가 없다. 오히려 옷깃이 스치는 소리와 날카롭게 부딪치는 소리에 바짝 사지를 수축시키다 오늘 자신의 끝이 이름 모를 낯선 사가가 아닌 죽음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애초에 부고 따위 보낼 필요 없었음에 이를 악문 혜준은 은장도를 꽉 쥔 채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심호흡 끝에 막 가마 문을 힘껏 들이받고 도망가려는 순간 급작스레 산을 울리는 비명에 몸을 굳힌다. 여러 차례 단말마의 비명이 울리다 그예 작은 창에 핏자국이 후드득 튀었을 때 더는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했다. 아비에게 버림받는 말로도 기구한 운명이라 여겼건만 이런 상황에 누군지도 모를 습격마저 받다니.

 

 잔뜩 겁먹은 토끼처럼 가마 안에서 몸을 웅크리다 비명이 잦아들고 마침내 저벅저벅 신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검 끝을 바짝 세운 혜준은 문이 천천히 열리며 보이는 익숙한 옷과 드러난 얼굴에 놀라 은장도를 떨궜다.

 

 “아…, 아-, ㅇ, 유진이……?”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짓는 해사한 미소는 인어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분명 존재해야 할 기다란 꼬리 대신 우뚝 선 두 다리에 정말 자신이 아는 유진이 맞는지 도통 확신이 서지 않는다. 으으, 근처에서 들리는 신음에 흘긋 사내가 옆을 돌아보는 동시에 목 옆쪽에 그어진 금 한 줄을 발견한 혜준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물속이 터전인지라 늘 나비 날갯짓처럼 작게 움직이던 또 다른 숨길이 지금은 꽉 닫혀 흉터처럼 남아있다. 모르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상처인 줄 알겠지만, 모양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혜준에게 저 흉터는 유진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또한 입고 있는 옷 역시 귀주머니를 찾아준 답례로 선물한 옷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유진이 아니라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납득하려 애는 쓰나 도통 이해되지 않는 표정인 혜준을 향해 팔 뻗어 손을 내민 유진은 피가 흩뿌려진 주변과 달리 멀끔한 행색으로 첫음절을 떼었다.

 

 “나랑 가. 나랑 가자, 혜준아.”

​-完.

  • Twitter
  • Postype

© 2021 Money game online only event : 10,000-hour rule

© Copyright 1만 시간의 법칙
bottom of page